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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기 칼럼] NPT 체제의 이중 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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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3. 09. 2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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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기 전 고려대 교수
핵확산금지조약(NPT)은 비핵보유국이 새로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과 보유국이 비(非)보유국에 핵무기를 양여하는 것을 동시에 금지하고, 보유국이 보유수량을 늘리고 질적 향상을 이루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1970년 제정된 국제규범이다. 즉 NPT 체제는 수평적 확산과 수직적 확산을 방지하는 것이 명분이자 목적이다.

특히 NPT 체제 출범 당시 핵보유국을 5개 국가로 제한하면서 수평적 확산을 방지하려고 했다. 소위 1967년 이전에 핵무기 개발을 완료한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다른 국가는 '핵무기 비보유국'으로 구분했다. 이 체제의 특징은 '핵무기 보유국'이 '핵보유로 인한 국제사회에서 우월적 지위확보'라는 독과점적 이익의 향유를 위해 담합(collusion)했다는 점이다.

NPT 체제는 5개국에게만 핵무기 보유권한을 독점적으로 부여했다는 점에서 불평등 조약이다. 특히 NPT의 불평등은 핵무기 보유국의 의무는 선언적으로 명시된 반면 '핵무기 비보유국'에게 부여된 의무는 법적 구속력이 매우 강력하게 적용된다는 점에서 차별적이다. 즉 국제사회에 적용되는 보편성은 외면되고, 핵국과 비핵국의 차별성이 강조되었다. 그래서 비핵국들의 반발을 사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핵보유국은 권한만 누리고 책임과 의무를 방기하고 정치적 판단에 따라 이중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받고 있다.
또한 핵보유국을 5개국으로 제한한 NPT 체제는 독과점적 속성이 있다. 그 속성은 NPT에 참여한 국가는 다른 국가의 행동으로부터 제약을 받거나 영향을 받는 상호의존성과 5개국이 우월적 지위를 보장·유지하기 위해 높은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특히 진입장벽은 '장벽 안의 담합자(=핵보유국)'와 '장벽 밖의 진입희망자(=비핵보유국)'를 구분하는 경계선으로 작용하며, 이 경계선을 두고 양측 간 충돌이 발생하게 된다. 결국 경계선이 핵무기 보유 여부를 결정하는 마지노선이 된다. 특히 '장벽 밖의 진입희망자'는 핵무기 보유가 국제질서 형성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 기준선으로 인식해 핵보유에 대한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제질서 참여권한을 부여받은 '장벽 안의 담합자'에게는 NPT 체제가 유지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행동이 요구되는 것이며, 여기에 이중 잣대가 적용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즉 핵보유 5개국이 많은 특권을 부여받고 있는 만큼 의무도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핵보유 5개국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의 지위를 보장받고 있다. 이는 5개국이 배타적 특권 부여와 배타적 레짐을 구축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국제사회가 NPT 체제를 수용한 근원은 핵위협의 방지와 핵전쟁의 예방을 위한 공공재로서의 역할 때문이다.

그러나 핵보유 5개국이 이중 잣대로 책임과 의무를 스스로 훼손시키고 있는 것이 항상 문제다. 예를 들면, 2006년 미국-인도 간 원자력 협정 체결이다. 이 협정의 핵심은 미국이 인도의 평화적 핵활동을 지원한다는 약속과 함께 인도의 핵보유를 기정사실로 인정한 것이다. 이 협정 체결로 인도의 첫 핵실험(1974년) 이후 지속된 핵동결이 풀리게 되면서 1년에 수십 발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농축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 반면 인도처럼 특별대우를 받지 못하는 이란, 파키스탄과 북한은 불만이다.

한편 중국은 이란, 북한과 파키스탄의 핵개발을 암묵적으로 지원한 암묵적 후견국이다. 특히 중국은 인도의 핵개발에 대해서는 비난하지만 파키스탄의 핵개발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또한 중국의 북핵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도 같은 맥락의 산물로 이해된다. 이처럼 NPT 체제에서 우월적 독과점적 지위와 특권을 가진 5개국이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기준을 달리하는 이중 잣대를 적용해 왔다. 문제는 이런 이중 잣대의 적용이 비확산체제 유지에 대한 신뢰성과 설득력을 잃게 만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최근 외신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사우디·이스라엘 관계 정상화 조건으로 사우디의 우라늄농축을 허용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란이 핵개발에 성공할 경우라는 단서가 붙긴 했다.

이 경우 사우디는 이란에 이어 중동에서 공개적으로 우라늄을 농축하는 두 번째 국가가 된다. 문제는 미국이 중동에서 이스라엘에 이어 핵 확산을 용인한다는 점에서 핵확산의 도미노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핵무기로 인한 인류의 재앙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국제규범인 NPT를 정면으로 위배한 행위다. 또 다른 이중 잣대의 전례를 만들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은 더 큰 문제다.

한편 우리는 사실상의 핵보유국인 북한의 핵위협에 실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한미 원자력 협정이 개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협정 개정에는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동 협정은 민감한 사안에는 재처리 및 형상·내용 변경 시 사전 동의, 미국의 동의 없이 제3국으로 재이전 금지 등과 같은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이는 인도와 대비하면 이중 잣대로 한국에도 완화된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특히 베트남에도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를 사실상 허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중 잣대의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한미 원자력 협정에서 한국이 지향하는 바는 호혜적이고 선진적인 신(新)협정을 마련해 원자력의 지속가능한 이용기반의 구축과 능동적 북핵 대비 태세도 갖추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 주권의 차원에서 핵주기가 완성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선행단계인 농축과 후행단계인 재처리 권한을 가져야 한다. 물론 핵주기 완성은 안정적 원전 원료 공급, 수출 경쟁력 강화, 국제비확산체제 강화에도 기여해야 한다. 특히 한국의 핵재처리 권한은 한국의 자강능력을 강화해 주고, 미국의 대남 핵우산의 허점을 보완해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해 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한미 당국의 전향적 입장 변화가 요구된다.

조영기 전 고려대 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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