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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정부도 시민도 준비 안된 필리핀 가사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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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승인 : 2024. 08. 09. 06:00

정리나_증명사진
지난 6일 필리핀 노동자 100명이 한국 땅을 밟았다. 고용노동부와 서울시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할 가사관리사들이다.

필리핀 가사관리사(가사도우미) 소식을 전하는 언론의 보도들 가운덴 '시급 1만3000원'·'월 238만원'을 강조한 보도가 제법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외국인 노동자를 왜 한국사람과 동일한 임금을 줘가며 대접하느냐"는 여론도 크다. 홍콩과 싱가포르에선 월 100만원도 안 주고 쓸 수 있는데 한국은 왜 그렇지 못하냐는 말도 따라 붙는다.

이들이 단순히 저임금 국가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라는 이유로, 한국사람과 똑같은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은 적어도 오늘날 우리 사회의 법규와 제도에선 명백한 차별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958년 고용·직업상의 차별금지 협약(제111호)을 채택했고 한국도 1999년 이를 비준했다. 이 협약은 ILO가 반드시 비준할 것을 요구하는 8개 기본 협약 중 하나다.

이 협약의 1조는 차별을 "인종, 피부색, 성별, 종교, 정치적 견해, 출신국 또는 사회적 신분에 근거한 모든 구별·배제 또는 우대로서, 고용 또는 직업상의 기회 또는 대우의 균등을 부정하거나 저해하는 효과를 가지는 것"이라 규정하고 있다. 필리핀에서 왔다는 이유로 최저임금보다 더 낮은 임금을 지급하자는 것은 출신국을 이유로 차별하자는 것이며 국제협약을 위반하고 보편적 노동권 향상을 위한 노력을 포기하자는 것이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이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 그나마 싱가포르는 노동자를 위한 의료보험 및 개인사고 보험 가입·보증보험 의무가입 등 다중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과로·학대·열악한 근무환경 등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들과 비교하며 실효성을 따지는 것 자체가 정부도, 시민도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라는 걸 보여주는 반증으로 읽힌다.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이 받는 시간당 1만3700원의 임금은 최저시급(9860원)과 4대 사회보험 등 '최소한'의 간접비용을 반영한 금액이다. 깐띤에서 50페소(약 1200원) 안팎으로 한끼를 해결할 수 있는 필리핀과 비교하면 상당한 액수지만 이들은 국밥 한그릇에 만원 하는 한국에서 살아야 한다. 게다가 자국민들조차 육아가 고민스러울 정도로 힘든 나라에서 일정한 수준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임금(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이들은 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실효성 논란 뒤엔 인간을 물화해 가성비를 따지는 우리가 있고, 또 그 뒤로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선 출산도, 육아도 힘든 한국 사회의 현실이 버티고 있다. 이 구조적 문제를 더 싼 외국인 가사도우미로, 그들에 대한 차별과 책임전가로 해결할 수 있을까? 외국인이란 이유로 동등한 임금을 보장 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손으로 아이를 길러내는 사회에선 그 어떤 아름다운 미래도 그려지지 않는다.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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