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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금감원의 키코 배상권고안, 처음부터 무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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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국 기자

승인 : 2020. 06. 10. 06:00

조은국[반명함] 사진 파일
“처음부터 이런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결국 금감원이 무리수를 둔 셈이죠”

금융감독원의 키코 배상권고안에 대한 한 금융권 고위 인사의 말이다. 그는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에서 키코 피해기업에 배상하라는 조정결정을 나왔을 때부터 은행들이 수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신한·우리·하나·산업·대구·씨티은행 등 6개 은행에 손실액의 15~41%를 배상하라고 권고했다. 이들 은행 중 우리은행만 권고를 수용해 배상을 완료했다. 반면 산업은행과 씨티은행은 지난 3월 일찌감치 불수용을 결정했고, 신한은행과 하나, 대구은행은 장장 6개월을 끌어 이달 5일 수용하지 않기로 했다. 당시 우리은행은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등으로 금융당국의 징계를 앞두고 있어 금감원과의 관계를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른 은행들은 장고(長考) 끝에 결국 ‘NO’를 선택했다. 키코 관련 배상이 이게 끝이 아닐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6개 은행이 권고받은 배상금액은 255억원이지만, 추후에 10배, 20배로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금감원은 은행들이 키코 배상권고안을 수용해도 업무상 배임이 아니라는 입장을 해당 은행에 전달했었다. 하지만 금융권에선 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한 은행 인사는 “금감원이 배임이 아니라고 해서 배임이 아닌 게 아니다”라며 “주주의 가치를 반하는 사안인 만큼 배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토로했다. 키코 사태는 2008년 발생한 만큼 10년이 넘어 법상 손해액 청구권이 소멸됐다. 법정으로 문제가 있는 배상을 처음부터 은행이 수용하기 어려웠다. 다만 윤석헌 금감원장이 취임 초기부터 의지를 갖고 밀어붙였던 사안이라서 은행 입장에선 눈치를 안 볼 수 없었다. 은행들이 다섯 차례나 연기를 요청했던 이유다.

키코 배상권고안을 은행들이 거부하면서 금감원의 위상도 크게 흔들렸다. 지금까지 금감원 권고를 금융사들이 거절한 사례는 거의 없었다. 그만큼 이번 사안에 담긴 의미가 크다. 잘못 끼운 단추로 인해 금감원과 은행이 어려운 상황을 자초한 게 아닌지 다시 한번 고민해봐야 한다.
조은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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