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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외교관 성추행과 한국외교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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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금민 기자

승인 : 2020. 08. 30. 19:25

정금민
정치부 정금민 기자
“국내적으로 우리 국민과 대통령께는 죄송하지만 다른 나라에 외교부 장관이 사과하는 것은 국격의 문제입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 25일 주뉴질랜드 한국대사관에서 발생한 ‘고위급 한국 외교관의 성추행 사건’이 외교적 갈등으로 비화된 데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하지만 ‘국격’을 이유로 뉴질랜드 정부와 피해자에 대한 공식 사과는 ‘거부’했다.

이번 사건이 외교부의 무성의한 대응으로 나라 안팎으로 비판을 받았던 터라 강 장관의 발언은 또 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한국 정부는 성추행 혐의를 받는 한국 외교관에게 이미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이는 피해자가 주장한 성추행 혐의를 어느 정도 인정했단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 대응 방식’에 대한 사과만 이뤄진 점은 어불성설로 비칠 수 있다.

강 장관이 피해자에 대한 사과 입장을 밝히지 않은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어 보인다. 강 장관으로서는 이번 성추행 사건이 한국 정부가 개입한 ‘국가형 범죄’가 아닌 만큼 직접 나서 공개 사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수 있다. 게다가 강 장관은 뉴질랜드 측이 저지른 ‘외교적 결례’를 언급하며 불쾌감을 드러 내고 있다. 외교관의 성추행 문제가 문재인 대통령과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와의 정상 간 통화에서 ‘이례적’으로 불거졌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국가를 상대로 한 사과가 당장 어렵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피해자에 대한 성의 있는 유감 표명이 나왔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강 장관이 언급한 ‘외교적 결례’도 뉴질랜드 측에 사과를 거부할 명분으로는 약하다. 상대국 정상이 결례를 저지른 부분에 대해서는 그것대로 외교적으로 처리하고, 한국 정부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것이 대한민국 국격을 올리는 ‘품격있는 외교’로 보여진다.

외교적 대응 차원의 문제뿐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예의와 사후 처리 과정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강 장관은 이미 3년이 지난 사건에 대해 “사실관계를 조금 더 파악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감봉 1개월의 ‘솜방망이 처분’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진상파악을 제대로 하지도 않은 채 징계를 결정했다면 이 역시 큰 문제다. 게다가 A씨가 귀임 조치를 받은 지난 8월3일 전까지 필리핀 총영사로 승승장구했던 사실은 피해자에게 좌절감마저 안기고 있다.

외교관도 잘못을 저지를 수는 있다. 하지만 한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이 성추행과 같은 ‘인권 문제’를 일으켰을 때는 국제사회에 재발 방지 노력 등을 빠짐 없이 설명하는 게 국격을 높이는 정공법이다. 특히 뉴질랜드가 한국전쟁때 인구 대비 가장 많은 군대를 파견한 ‘우방국가’임을 다시 한 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雨後地實)’는 말이 있다. 한국 정부가 역지사지의 자세로 이 문제를 품격있게 처리해 두 나라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정금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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