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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자연 숨쉬는 고창서 ‘숨은 보물’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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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기자

승인 : 2023. 11. 21. 16:13

유네스코 세계유산 7개 보유
자연, 인간, 문화, 생태 어우러진 곳 좇다보면 '힐링'
관광공사 전북지사 강소형 잠재관광지 '운곡람사르습지'도 볼만
도솔암 마애불
도솔암 마애불. 거대한 바위절벽에 새겨져 볼수록 웅장하다./ GNC21 제공
친숙한 것의 가치는 과소 평가되기 일쑤다. 전북 고창에는 잘 알려진 것들이 많다. 천년고찰 선운사가 대표적이다. 봄에 초록융단 깔리는 청보리밭은 연인들이 좋아한다. 여긴 오래 전부터 '인증샷' 명소로 통했다. 아이들은 고인돌 군락지에서 만화 같은 풍경을 좇는다. 풍천장어, 복분자는 미식가들이 꼽는 고창의 별미다. 이게 전부일까.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자연과 문화과 이땅엔 수두룩하다. 들어보시라. 이 고장이 얼마나 '세계적'인지.

먼저 선운산 이야기. 선운산은 도솔산으로도 불렸다. 천년고찰 선운사를 품었다.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24년(577년)에 검단선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한다. 조선후기에는 89개의 암자와 189개의 요사를 거느릴만큼 번성했다. 늦은 봄에는 단아하게 피는 동백꽃이 좋고 가을에는 애틋한 꽃무릇이 예쁘다. 요즘처럼 계절이 교차할 때는 한갓진 경내의 툇마루에 앉아 청아한 풍경소리를 음미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선운사
선운사. 한갓진 경내를 산책하는 일도 이 계절에 운치가 있다./ GNC21 제공
선운사
선운사 가는길. 고즈넉한 분위기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GNC21 제공
선운사 이야기는 여기까지. 경내에서 도솔암까지 가는 길을 보자. 거슬러 오르면 만나는 진흥굴(좌변굴)은 신라의 진흥왕이 수도한 곳으로 전한다. 위쪽에는 내원궁이 있다. 선운사 지장보살좌상이 안치된 곳. 이곳 남쪽 만월대 절벽에 그 유명한 도솔암 마애불(미륵장륙마애불)이 새겨졌다. 알현하면 눈이 번쩍 뜨인다. 깎아지른 암벽에 13m 높이의 불상 조각이 새겨졌다. 이 앞에서 사람들은 무사안일과 무병장수를 기도한다. 그런데 마애불이 새겨진 바위절벽에 관심 두는 이는 없다. 일대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지질명소라는 것을 알면 불상 말고 '바탕'도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고창과 부안에 속한 서해와 갯벌 등은 전북 서해안 국가지질공원이다. 오래된 암석, 퇴적물이 곳곳에 산재해 있어서다. 지질 발달 과정을 잘 관찰할 수 있는 자연학습장이다. 특히 백악기 화산암체는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화산활동 과정과 다양한 화산분출 작용, 퇴적작용에 관한 정보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이 가치를 인정받아 올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을 받았다. 고창은 도솔암 마애불을 비롯해 모두 13개소의 지질명소를 갖고 있다. 진흥굴도 포함된다.

병바위
강변에 우뚝 솟은 병바위(왼쪽). 응회암이 풍화와 침식작용을 거치며 지금의 모습이 됐다./ GNC21 제공
고창의 지질명소 중에서 아산면의 병바위도 흥미롭다. 맞닥뜨리면 눈이 호강한다. 호리병 같기도, 사람얼굴 같기도 한 큰 바위가 홀로 강변에 우뚝 서있다. 높이 35m의 그야말로 기암괴석. 형태가 괴이해 신선이 술에 취해 술상을 걷어차자 떨어진 술병이 거꾸로 박혔다는 전설도 한 자락 걸쳤다. 실상은 용암과 화산재로 만들어진 응회암이 풍화와 침식을 거치며 지금의 모습이 된 것. 늦가을 서정 오롯한 강변을 걸으며 희한한 바위를 구경하는 재미가 제법이다. 시간과 자연이 빚은 거대한 예술작품이 여기 있다. 병바위의 생김새는 예나 지금이나 화제였나보다. 조선시대 많은 문헌에도 등장한다.

고창고인돌유적
고인돌 유적지/ GNC21 제공
고창고인돌유적
고인돌 유저지/ GNC21 제공
잘 알려진 아산면, 고창읍 일대의 고창 고인돌 유적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2000년에 등재됐다. 일대는 지질명소이기도하다. 선사시대 사람들은 왜 돌로 무덤을 만들었을가. 당시 이들의 생사는 자연환경과 기후변화에 좌우됐다. 이러니 환경의 변화에도 오래도록 잔존하는 것에 대한 숭배가 자연스럽게 생겨났단다. 거대한 바위도 숭배의 대상이었던 것. 게다가 거대한 바위는 죽은자가 산자에게 끼칠지 모를 위해도 막아준다고 여겼단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요즘이라 쉬이 변치 않는 돌멩이 얘기가 새삼스럽다. 우리나라에 고인돌은 몇기나 있나. 3만여 기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2000여 기가 고창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단다. 고인돌 유적지에만 약 500기가 모여 있는 데 세계에서 이만한 숫자가 군집을 이루는 곳이 없단다.

고창 고인돌 유적지에는 총 6개의 탐방코스가 조성돼 있다. 이 가운데 1~5코스는 연결돼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특히 5코스에는 가장 많은 220기의 고인돌이 분포한다. 4코스에서는 고인돌 상석을 캐내던 채석장도 볼 수 있다. 6코스는 1~5코스와 조금 떨어져 있다. 늦가을에는 한갓져서 쉬엄쉬엄 산책하기에 어울린다.
고창판소리박물관
고창판소리박물관/ GNC21 제공
이것도 전부가 아니다. 곰소만 내에 위치한 싱싱한 고창갯벌은 202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고창판소리와 고창농악은 2003년, 2014년 각각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202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역시 동학의 전국적 확산의 시발점이 된 고창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심지어는 2013년 행정지역 전체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이름을 올렸다. 자연과 생태, 인간과 문화가 그만큼 건강하게 어우러진다는 얘기다. '유네스코' 간판을 단 '보물'을 무려 7개나 품고 있는 고창이다. 이것들만 좇아 다녀도 하루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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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운곡람사르습지/ GNC21 제공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곳은 또 있다. 아산면의 고창운곡람사르습지다. 2011년 4월에 람사르 습지로 지정됐다. 생태계가 풍요로워 보존 가치가 있다는 의미다. 습지는 생태계에서 육지와 물을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랜 기간 퇴적물이 쌓인 덕에 수많은 수생식물들이 자생한다. 물풀 사이를 비집고 물고기가 알을 낳고 새들이 휴식을 취한다. 여기도 수많은 생명의 보금자리다. 멸종 위기 야생 동식물로 지정된 수달, 황새, 삵, 구렁이, 새호리기, 가시연 등을 비롯해 어류 533개체, 양서·파충류 12종, 조류 611개체, 포유류 11종, 곤충 297종, 나비 22종이 서식한다.

4개 코스에 걸쳐 탐방로가 잘 조성됐다. 쉬엄쉬엄 걸으며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려는 이들에게 어울린다. 고인돌 유적지와 연결되는 1코스가 인기다. 3.6km로 완주하는 데 약 50분 걸린다. 운곡저수지를 에두르는 2코스(9.5㎞·2시간 30분)를 마음 내키는만큼 걷는 이들도 있다. 안덕제, 운곡서원, 조류관찰대, 용계마을을 거친다. 용계마을 친환경 주차장에서 운곡서원까지 운곡습지생태공원 탐방열차(전기열차)도 다닌다. 바람소리, 새소리 들으며 습지를 헤집고 다니면 몸이 상쾌해지고 정신이 맑아진다. 한국관광공사 전북지사는 이 천연한 습지를 강소형 잠재관광지로 선정했다. 덜 알려졌지만 지속 가능한 관광지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다. 오충섭 한국관광공사 전북지사장은 "생태환경 보존의 의미와 가치를 공감하기에 충분한 곳"이라며 "지속 가능한 생태관광자원으로 자리매김시키겠다"고 소개했다. 아는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는 것이 여행이다. 마침 느긋하게 산책하며 마음 살피기 좋은 계절. 알고 구경하는 고창은 재미가 배가 된다.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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