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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준의 와이드엔터] 김민기와 현철의 노래로 본 우리말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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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준 기자

승인 : 2024. 07. 28. 11:12

아름다고 정제된 순 한글 노랫말로 대중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
김민기
지난 21일 별세한 고(故) 김민기가 남긴 노래는 아름다운 우리말 가사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진은 지난 2011년 2월 자신이 운영하던 극단 '학전'의 창단 20주년을 맞아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는 모습./연합뉴스
지난 2016년 밥 딜런이 뮤지션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믾은 찬반양론에도 모두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사실은 그의 노래가 지닌 어마어마한 영향력이었다.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in the Wind') 등 대표곡들은 아름다운 선율과 더불어 삶을 관조하는 듯하지만 날선 저항 정신을 가득 담아낸 노랫말이 특징으로, 1960~70년대 젊은이들의 혼란스러운 마음과 가슴 절절한 고통을 대신 고백하고 어루만졌다. 이는 소설과 시 등 동 시대 그 어떤 문학 작품도 일궈내지 못한 성과였는데, 대중과 진심으로 소통할 수 있다면 방식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걸 훗날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뒤늦게 증명한 혁명과도 같은 업적이었다.

많은 이들의 슬픔과 아쉬움을 뒤로 하고 지난 21일 별세한 김민기가 팝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태어나 음악 활동을 계속 이어갔다면 세계 대중음악사에서 아마도 딜런 이상으로 융숭한 대접을 받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상상해본다. '아침이슬' '상록수' '친구' '작은 연못' '늙은 군인의 노래' 등 고인이 만들고 직접 부른 노래 모두가 그 시절 우리 청년문화에 미친 영향의 크기, 더 구체적으론 노랫말의 완성도 수준을 따져봐도 딜런에 비해 앞섰으면 앞섰지 절대로 뒤지지 않는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어서다.

김민기가 쓴 가사의 가장 큰 장점은 무척 평이한 우리말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아침이슬')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 지지요'('작은 연못') 등과 같은 구절이 말해주듯, 김민기의 노랫말 대부분은 한자식 혹은 문어체적 표현이 없어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따라부르기 편할 뿐더러 다양한 형태의 회화적 이미지와 심상으로 가득해 곱씹을수록 한 편의 그림동화처럼 다가온다.

김민기의 노랫말과 결을 달리하고 본인이 직접 쓰지는 않았지만, 구수하고 해학적인 비유로 한국인들만의 오랜 정서를 건드리기로는 김민기보다 일주일 여 빨리 세상을 떠난 현철의 가사를 빼 놓을 수 없다. '손대면 톡 하고 터질것만 같은그대, 봉선화라 부르리'로 시작하는 '봉선화 연정'의 도입부와 '싫다 싫어'의 절정인 '당신의 거미줄에 묶인줄도 모르고 철없이 보내버린 내가 너무 미워서'는 그 표현이 은근하게 관능적이고 민망하지 않을 만큼 적당히 자조적인 덕분에, 사랑에 단 한번이라도 웃고 울어본 사람이라면 듣자마자 무릎을 탁 치며 절로 빠져들게 된다.
아무리 반복해 들어도 내용을 파악하기 힘든 가사의 노래들이 많아지고 있는 요즘이다. 물론 아이돌의 히트곡 중에서도 오마이걸의 '비밀정원' 같은 노래는 지극히 개인적인 주장이지만 50대 아저씨가 들어도 애틋하게 느껴질 만큼 가사의 서정성이 돋보인다. 그러나 이 노래 정도를 제외하고 젊은 층이 즐겨듣는 가요 대부분의 가사는 해외팬들을 겨냥해서인지 영어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을 뿐만 아니라, 문장의 형태가 아닌 단어들의 나열로 느껴지는 탓에 외국 노래를 대하는 것마냥 어색할 때가 많다.

K팝 뮤지션들이 김민기와 현철의 노래처럼 한 번쯤은 정제된 순 우리말로 작사에 도전해보는 것도 신선할 듯싶다. 이들이 여러 나라의 팬들과 소통하기 위해 국제적 감각을 더한 언어로 노랫말을 쓰는 걸 괜히 트집잡는 게 아니다. 유려한 선율에 더해진 아름다운 우리말 가사로 국내에서는 팬층을 넓히고, 더 나아가 해외 팬들에게 한글의 숨은 매력까지 널리 알릴 수 있다면 실리와 예술적 성취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결과로 이어질 것같아 드리는 말씀이다.
조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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