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종부세 납부 대상자는 54만8000명. 대한민국 상위 2.9% 수준의 주택 보유자가 내는 세금이니, 그 세금 나도 내고 싶다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그런데 훨씬 많은 사람이 알게 모르게 종부세를 내고 있다. 종부세를 내고 싶다는 사람 중에 이미 종부세를 낸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뭔 소리냐고?
지난 여름, 정말 더웠다. 역대급 폭염에 에어컨이 불티나게 팔렸다. 정부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에어컨에 세금을 매기기로 했다고 치자. 에어컨을 구매한 소비자보다 에어컨을 팔아 돈을 번 기업에게 세금을 부과하
는 게 아무래도 좋을 것이다.
에어컨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는 가격은 100만원이고, 정부는 기업이 에어컨 한 대를 팔 때마다 세금 20만원을 부과하기로 했다고 가정해보자. 이제 에어컨의 공급 곡선은 위쪽으로 20만원만큼 이동한다. 즉, 에어컨 공급이 줄어든다. 공급이 줄었으니 가격은 오르기 마련이다. 세금 부과 후 에어컨의 새로운 균형가격은 110만원이 됐다. 여기서 20만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이제 기업이 에어컨 한 대를 팔아서 버는 돈은 90만원으로 줄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에어컨 한 대에 20만원을 세금으로 냈는데 기업이 버는 돈은 10만원밖에 줄지 않았다. 그럼 나머지 10만원은? 이 10만원은 소비자가 부담했다. 100만원이던 에어컨 가격이 세금 부과 후 110만원으로 올랐으니 소비자도 세금으로 10만원을 낸 셈이다. 정부가 기업에 매긴 세금 20만원 중 10만원만 기업이 내고 10만원은 소비자에게 떠넘겨진 것이다. 이른바 '조세 전가'다.
부동산 시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종부세가 늘어나면 겉으로 봐서는 주택 보유자의 세 부담만 커지는 것 같다. 그런데 무주택자들이 마냥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종부세 부담을 덜기 위해 집주인이 월세를 올려받거나 전세를 월세나 반전세로 돌리는 경우가 많아서다. 실제로 주택 보유세(재산세+종부세)가 1% 늘면 월세가 0.06% 오른다는 연구 결과(파이터치연구원 연구보고서)도 있다. 집 가진 사람을 겨냥한 세금 부과의 파편이 집 없는 세입자에게 고스란히 튀고 있다는 얘기다.
종부세는 집값 안정이라는 당초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주택 소유자에 대한 징벌적 세금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재산세가 있는데도 그 위에 또 종부세를 매기는 건 이중과세라는 지적도 많다.
집값은 잡지 못하고 국민 부담만 키운 종부세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종부세는 없애고 재산세로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