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와야 밤새 자란 새순 남들보다 먼저 꺾어
맨손으로 채취하다가는 독올라 큰 일 날 수도 있어
독성빼기 위해 물에 담갔다 빼기 여러번 반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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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교수에 따르면 4억만년 전부터 형성된 양치식물(고사리 종류)인 고사리는 국내 300여 분류군 중 80%가 제주에 분포한다. 어린 새순을 채취해 독성(삶아서 물에 담그는 방법)을 빼고 먹는다. 국내 서식 고사리 중 식용이 가능한 것은 고사리와 고비 등 10종에 불과하다.
제주도는 고사리가 생육하기 좋은 기후와 토양을 갖췄다. 그래서 영양이 많고, 식감과 맛, 향이 좋다. 특히 제주도 고사리는 궐채(闕菜)라 하여 임금님께 진상되던 중요한 식재료였다.
지난 21일 새벽 5시에 고사리 채취 경력이 50년 넘는 주민 A씨(서귀포시 성산리)의 고사리 채취 현장을 따라나섰다. 새벽부터 나가는 이유로 A씨는 대단한 비밀이 숨어 있다고 말해 궁금을 불러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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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덤불 속에서 고사리를 채취하기 시작했다. 기자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았다. 덤불은 가시도 엉키어 있어 자칫 다칠 염려도 있었다. 위험한 덤불에서 채취하는 이유로 A씨는 "새순은 토실하고 부드러워 식감이 좋다. 그리고 맛과 향이 다르다"고 했다. 초지에서 채취한 가늘한 고사리와 달랐다.
A씨에게 비밀이 뭐냐고 물었더니 웃으며 "지금 보지 않았나. 부드럽고 토실한 고사리가 덤불에 있다는 사실을. 새벽에 와야 밤새 자란 고사리를 남들보다 먼저 꺾는다"고 했다. 아침 9시가 넘으면 남들이 꺾고 남은 고사리 생육이 오죽하겠냐며 새벽길을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비밀은 장소라고 했다. 고사리는 생태학적으로 다년생이라 같은 장소에서 나고 자란다. 그래서 전문채취인들은 자기만 다니는 장소는 비밀이라고 했다. 무슨 요리 비책 같았다.
그는 관광객이나 일반인에게 몇가지를 당부했다. 고사리 채취에 나설 때는 복장(안전화 또는 장화), 위치 추적이 가능한 휴대전화, 호루라기, 특히 채취 시 반드시 장갑을 끼어야 한다. A씨도 무심코 맨손으로 고사리를 꺾고 나서 그손으로 준비해간 과일을 먹었다가 온몸에 식중독이 퍼져 며칠간을 고생했다는 경험담을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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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는 일정한 간격 없이 덤불속과 주변에 흩어져 있어 고개를 숙여 꺽다 보면 자기 위치를 잊고 만다. 특히 안개 낀 날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오창환 제주동부경찰서장에게 물어봤다. 바로 메뉴얼이 전화로 도착했다. 경찰서 범죄예방과는 고사리 철에 '고사리 채취객 실종 방지 예방 활동' 메뉴얼을 만들어 특별히 안전에 신경 쓴다고 했다. 지난 3년간 66명의 실종(미귀가)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가시거리가 짧을 때는 채취 행위를 자제하도록 일선 파출소와 읍면동 행정센터에 협조 요청을 한다. 방향감각을 잃었을 때 바로 119나 112에 신고할 것을 당부한다.
고사리를 채취를 마치고 오전 9시 20분 집으로 돌아왔다. 요즘 기온 이상으로 예년보다 고사리 새순이 늦게 돋아난다. 생각보다 채취한 양이 적어 대략 7kg 정도였다. 고사리를 삶고 말리면 약 700g 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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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가 정성이 많이 들어간 식재료라는 말이 그럴듯하다. A씨는 팔려고 채취하는 것이 아니라, 집안 행사와 식당을 운영하며, 손님에게 내놓는 반찬용으로만 채취한다.
A씨가 운영하는 성산의 향토음식점은 제주도 6084개 음식점 중 57개에 불과할 정도로 흔치 않다. 그만큼 제주 토속음식 식재료에 자부심을 갖는다. 특히 흑돼지오겹살 구이, 갈치구이와 조림, 고등어구이와 조림, 옥돔구이, 돌솥 영양밥 등이 주요 메뉴인데 이들 음식과 고사리 맛이 잘 어울린다고 한다.
귀하게 자연에서 얻은 거지만, 손님에게 고사리 장아찌와 볶음은 넉넉히 내어 놓는다. 소문 듣고 오는 손님 중에는 혹시 고사리 장아찌 주는 집 맞냐고 물어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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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좌농협 하나로마트 문경석 상무는 "건 고사리 1kg을 7만 5000원에 수매하고, 삶은 고사리는 1kg을 7000원에 수매한다. 삶은 고사리를 건조하면 딱 10분의 1로 무게가 줄어든다. 건 고사리 100g에 8500원, 200g에 1만8000원에 판매한다. 포장비와 운영비를 제외하고 나면 노마진을 넘어선다"고 했다.
제주고사리는 대부분 자연에서 채취한다. 그리고 식탁까지의 긴 여정에서 여느 식재료보다 손이 많이 간다.
제일중앙병원 홍영종 원장은 "고사리를 산에서 나는 소고기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백질과 식이섬유, 아미노산, 비타민, 복합탄수화물 등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양분은 면역력 강화, 변비예방, 뼈건강, 고혈압 예방 등에 효과가 있다. 특히 고사리는 100g당 20cal의 열량을 내는 저열량 식품이라고 한다. 말리면 칼륨과 마그네슘, 철분 등의 무기질이 더욱 풍부해진다. 그래서 피부와 점막을 보호하여 피부 미용에도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