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최광 칼럼] 하늘이 내린 이승만 대통령 제대로 이해하기(하)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api2.asiatoday.co.kr/kn/view.php?key=20240328010016912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4. 03. 28. 18:17

2023112201002603500145331
최광 대구대 석좌교수·전 보건복지부 장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의 만악(萬惡)은 자유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그 중요성에 대한 지도자들과 시민들의 무지에서 야기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하물며 지금으로부터 120년도 전에, 이 대통령은 '자유의 중요성'을 어떻게 인식하였을까? 이승만 대통령이 주장한 자유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개인의 자유로운 생각과 행동을 억압하는 요소-즉 신분제, 관리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마음, 사대주의 등과 같이 구래의 나쁜 전통이나 관습-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했다. 다른 하나는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처리하는' 자주·독립 정신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였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이나 시민들도,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 바에 따라 살 때 당사자나 국가가 얻는 혜택이 생각보다 엄청 크다는 사실을 모른다. 지도자들만 무지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초·중·고·대 모든 교육 과정에서 '자유'를 제대로 가르쳐지지 않아, 대다수 국민들이 자유의 의미와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조선이 문명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대외적으로 개방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개방의 필요성을 세 가지 관점에서 강조했다. 첫째는 당시의 국제정세를 고려할 때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햇빛이 사방을 모두 비치고야 마는 것 같이, 서양에서 일어나서 들어오는 새로운 문명을 우리 홀로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서양의 앞선 지식과 기술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누리는 영광과 번영은 말할 것도 없고 보통 사람들이 사는 것을 보더라도", 조선이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서양의 앞선 지식과 기술을 포함한 새로운 문물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교역 당사자 모두를 이롭게 하는 교역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것은 "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건들은 이웃의 도움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웃이 많을수록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물품들은 좋아지고 많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독립정신』의 <후록>에는 '효험이 있는' 독립정신 실천 6대 강령과 25개 방책이 제시되어 있다. 6대 강령은 이렇다. ①세계에 대해 개방해야 한다. ②새로운 문물과 법이 집안과 나라의 근본이다. ③ 외교를 잘해야 한다. ④국권(주권)을 중하게 여겨야 한다. ⑤도덕적 의무(의리)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⑥자유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것들은 이승만 대통령이 젊었을 때인 개화기는 물론, 당신이 나라를 건국할 당시에도 중요한 실천 강령이었고, 21세기 오늘날에도 지도자들이 명심해야 할 교본이라는 점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혜안이 감탄스러울 뿐이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에 바탕을 두고 건국되고 국난 속에서도 민주주의가 지켜진 것은, 전적으로 이승만 대통령 덕분이다. 80년대 민주화 세력에 의해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건국 과정과 공산 세력과의 전쟁의 와중에서, 이 나라를 세우고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분들의 노력이 먼저 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이승만 대통령을 중심으로 자유민주주의 헌법을 기초로 해서 대한민국이 건국된 자체가, 우리의 5천년 역사에서 가장 큰 민주화 작업이 아닌가? 인류 역사에서 공산주의·사회주의가 정점(頂點)에 달했던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극심한 혼란 속에서, 이승만 건국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 국가 수립이란 위업이 없었다면, 과연 1980년대 민주화가 과연 가능하였겠는가? 정부 수립 후 3년도 안 된 시점에서 공산세력이 무력 도발을 했을 때, 이를 바로 격퇴시킨 그 고군분투가 어쩌면 건국이후 우리나라 민주화의 두 번째 초석이 아닌가? 이 두 업적과 비교해 볼 때, 요란스러운 80년대의 민주화 운동은 민주화 과정에서 세 번째의 작은 방점에 불과할 뿐이다.
오늘의 대한민국과 이승만 대통령을 생각할 때면 필자는 언제나 학문적·과학적 근거를 넘어서는 확신에 빠진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대한민국을 특별히 선택하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나님의 은총이 없었다면, 이승만 대통령도 없고 오늘의 대한민국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 왕조 말기 삶이 비참하기 짝이 없었고 문명이 미개(未開)하기 그지없는 상황에서, 조선을 찾은 선교사들은 우리 민족을 미개 상태에서 문명으로 개조했다. 빈곤과 미개에 찌들던 우리를 풍요와 문명 속에 삶을 영위하도록 만든 것은, 전적으로 선교사들 덕분이다. 이 땅에 선교사들이 보내진 것은 기적 중의 기적으로,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 덕인 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다.

1884년에 입국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알렌(Horace N. Allen)을 시작으로 해방까지는 1529명(그중 여성 선교사 1114명), 100주년이 되는 1984년까지는 도합 2956명의 선교사들이 내한했다. 통상 우리는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 근대적 학교를 세우고, 서양 의술이 도입되고, 교회가 세워지는 등의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주목한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천지개벽한 것처럼 한국 사회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선교사들은 인간과 신을 보는 관점, 세계관, 직업관, 남녀평등, 자유 개념 등 상부구조는 물론 정치·경제·사회 체제의 하부구조까지 근본적으로 변화된 새로운 세상을 한국인들에게 선물했다. 기적에 의해 한국에 온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기적을 일구어냈던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개인적 성장과정, 독립운동과 건국 과정, 그리고 건국 후 국가를 이끌고 운영하는 기나긴 여정에서 그를 교육시켜 반듯한 지도자로 만든 배경에는 기독교와 선교사의 기도와 노력들이 있었다. 독립운동가 이승만은 옥중에서 성령체험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인 후, 기독교 신앙을 자신의 삶과 사상 그리고 대한민국 건국의 기초로 삼았다. 그리고 성령 체험을 통해 거듭났기에, 옥중에서 아무런 자료도 없이 『독립정신』을 집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선교사들이 만들어 낸 기적 속에 우뚝 솟아난 인물이 이승만 대통령이었다. 그렇게 성장한 지도자 이승만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초석을 쌓았고, 그 대한민국이 세계 15대 경제 강국의 반열에 올랐다. 필자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임이 틀림이 없다고 확신한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최광 대구대 석좌교수·전 보건복지부 장관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