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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온 지속되자 “감귤은 끝났다” 제주 농부, 과감한 선택 25년 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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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석 기자

승인 : 2025. 06. 29. 09:22

기후위기를 기회로 바꾼 서귀포 유광농장 송성진 대표
감귤 베고 애플망고 등 윈터프린스, 설향 등 심어
IT프로그래머 딸인 만든 자동제어로 최적환경 조성
'미친선택→성공사례'로…이젠 노하우 아낌없이 전수
입구사진
서귀포 위미리 유광농장 전경.
제주도는 기후로만 보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섬이다. 제주도의 6월 한낮, 평년보다 3도 높은 기온을 보인 날 서귀포시 위미리 유광농장 송성진(64) 대표는 마른 장마 만큼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25년 전 장마에는 엄청난 비가 왔었는데 지금은 비가 오는지 마는지…"

기상청에 따르면 제주도의 평균기온은 지난 30년간 1.6도 상승했다. 이는 전국 평균보다 높은 수치다. 특히 겨울철 온도 상승폭이 커 전통적인 감귤 재배에 비상등이 켜졌다. 감귤의 당도는 떨어지고, 조기 개화로 인한 생육 이상 현상이 빈발하고 있다. 하지만 25년째 이 변화를 지켜본 송 대표에게 기후변화는 더 이상 '위기'가 아닌 '기회'였다.

"25년 전 선택이 내 인생을 바꿨습니다." 2000년대 초반, 대를이어 감귤 농사를 이어오던 송 대표는 남들이 보기엔 무모한 결정을 내렸다. 감귤나무를 베어내고 열대과일로의 품종 교체를 결정했다.

"주변에서 모두 미쳤다고 했어요. 제주도에서 열대과일이 되겠냐고요. 하지만 기후 데이터를 보니 확신이 섰습니다. 10년 후엔 지금보다 더 따뜻해질 거라고요."

송 대표의 예상은 적중했다. 현재 그는 총 6950평 규모의 온실을 운영하며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애플망고 하우스 1700평을 비롯해 딸기 양액재배 하우스 750평, 만감류 및 실험작물 재배 하우스 4500평에서 7가지 작물을 동시에 키우고 있다.

농장내부
유광농장 애플망고 내부
설명
애플망고를 설명하고 있는 송성진대표와 개발중인 컨트롤박스
◇프로그래머 딸과 함께 만든 차세대 농업 시스템
유광농장에 들어서면 기존 하우스들에 있는 패널과는 다른 컨트롤 박스가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IT 프로그래머인 딸이 직접 설계하고 코딩한 자동 제어시스템이다. 기존의 아날로그 데이터를 프로그래밍으로 디지털화해 보다 세밀하게 온도 관리가 가능해졌다.

"딸아이가 농업에 관심을 가지면서, 25년간 경험으로 쌓은 데이터를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주니까 온도 조절이 훨씬 세밀해졌죠." 현재 유광농장의 주력 출하 작물은 만감류(레드향, 카라향, 천혜향, 윈터프린스), 애플망고, 딸기(설향) 등 6종이다. 여기에 실험 재배 중인 열대 리치와 레드파인애플까지 총 8종의 작물이 각각 최적화된 환경에서 자라고 있다.

◇아열대 작물, 제주 농업의 새로운 희망
송 대표의 성공은 제주 농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24년 기준 제주도 내 아열대 작물 재배 면적은 221.1헥타르로 전년 대비 35% 증가했다. 애플망고를 비롯해 파파야, 용과, 스낙파인애플까지 다양한 열대과일이 제주 땅에 뿌리내리고 있다.

"처음엔 저 혼자였는데, 이제는 주변 농가들이 찾아와서 노하우를 묻더라고요. 기술 전수도 아끼지 않고 있어요." 송 대표는 현재 서귀포시농업기술센터와 연계해 신규 농업인 멘토링도 담당하고 있다. "나혼자 알고 있기에는 내가 가진 노하우들이 너무 아까워요. 같이 잘살면 좋은거 아니겠습니까."

◇실험과 연구가 만든 지속가능한 농업 모델
유광농장의 혁신은 단순한 생산 확대에 그치지 않는다. 다양한 작물의 실험 재배를 통해 제주 기후에 최적화된 품종을 찾아내고, 재배 기술을 정립하는 것이 주요 목표다. "리치나 레드파인애플 같은 새로운 작물들은 아직 실험 단계예요.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앞으로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작물들이죠."

송 대표는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기존 작물로 운영비를 충당하면서, 동시에 미래 먹거리를 위한 실험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이러한 선순환 구조가 농장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핵심이다.

과실
애플망고, 윈터프린스, 리치(왼쪽부터)
◇제주 농업의 미래를 제시하다
제주도는 2025년 현재 아열대 과수 도입 확산 사업에 대폭 늘어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농촌진흥청도 기후변화 대응 농업기술 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며 디지털·AI 기반 품종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송성진 대표는 "단일 작물 의존에서 벗어나 기후 적응형 다품종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며 "지금이 제주 농업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결정적 시기"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제주 농업이 나아갈 방향을 '스마트 기후 적응형 농업'으로 진단한다. 송 대표 같은 선도 농가의 경험을 확산하고, 청년 농업인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정책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농업도 이제 4차 산업혁명 시대"
"제주도가 동아시아 아열대 농업의 테스트베드가 될 수 있어요.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실험들이 앞으로 한국 농업의 미래를 결정할 거예요." 송 대표의 유광농장은 단순한 성공사례가 아니다. 기후위기라는 절체절명의 도전 앞에서 끊임없는 실험과 혁신으로 답한 제주 농업의 미래 연구소다.

25년 전 '미친 선택'이라 불렸던 그의 도전이 이제는 제주 농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 되고 있다. 기후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지혜, 그것이 바로 미쳤다는 소리를 들은 젊은 농사꾼이 미래 제주농업을 위해 남긴 가장 소중한 유산이 되고 있다.
정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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