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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래정 “父, 정몽주 후손다운 언행 당부… 정체성 유지하려 국어 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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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은 기자

승인 : 2026. 02. 23. 17:48

포은 정몽주 선생 25대 종손
어려서부터 '언행 신중' 듣고 자라
정몽주 선생 연구·기록 사업 추진
국내외 동상 봉헌 등 기념사업 주도
영일 정씨 포은(정몽주)공파 종손 정래정 선생 인터뷰4
포은 정몽주 선생의 25대 정래정 종손이 23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충렬로 충렬서원에서 진행된 본지와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정재훈 기자
"아버지인 정철수 선생께서는 독립군 활동을 했던 중국에서의 생활을 접고, 대한민국 귀국을 결정하며 이렇게 말하셨다. '나무는 천길만길을 자라도 결국 그 잎을 그 뿌리에 떨어뜨려 다시 그 밑거름이 된다(낙엽귀근)는 말이 있다. 집안의 장자이자 포은 정몽주 선생 종손으로서 한국에 와서 조상 제사 모시고, 어머니를 모시고 여생을 지내고 싶다'고 하셨다."

포은 정몽주 선생의 25대 종손이자 독립운동가 정철수 선생의 장자인 정래정 종손은 23일 아시아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1957년 중국 길림성(吉林省) 연변(延邊)에서 정 선생과 배우자 김순옥씨의 1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2년 정 선생이 학도병 징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해 중국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하고, 이후 중국에 머물게 되면서 정래정 종손 역시 중국에서 나고 자랐다.

정 종손은 "아버지가 고려대학교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에 다니고 계셨는데 1942년 말 일제로부터 학도병으로 징집을 당하게 됐다"며 "기차로 며칠 밤낮을 달려 산둥반도에 도착했는데 그때 동료들과 함께 탈출하기로 마음을 먹으셨다더라"고 말했다.

그는 정 선생이 독립군 합류를 결심하게 된 배경에 대해 "사실 그때 보성전문학교 교장이 김성수 선생이었는데, 일제의 강요로 학생들을 학도병으로 동원하면서 그 교장 선생이 당시 학생들을 학도병으로 보내면서 이런 말을 했다더라"며 "'교장으로서 제자들이 전쟁터에 가는 걸 막지 못하는 자격도 없는 사람인데, 그런데 이것만 부탁하고 싶다.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지만 한반도에서는 도저히 독립운동을 할 수 없으니, 어디로든 가게 되면 일제와 싸우는 군대가 있으면은 거기에 가담하라'고 했다더라"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자신의 의지와 타인의 마음까지 받아 중국에서 조선의용군 소속으로 일제에 맞섰던 정 선생은 2차 세계대전 종료와 광복 이후에도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전쟁에는 참가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중국에 머물기를 택했다. 이후 1983년 어머니가 방송국 문을 두드리며 자신을 애타게 찾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듬해 어머니를 뵌 후 영구 귀국을 결심, 1986년 대한민국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정래정 종손은 정 선생에게 포은 정몽주 선생의 후손으로서 언행을 신중히 해야 한다는 당부를 듣고 자랐다. 그 영향으로 정 종손은 귀국 후 포은 선생의 명나라 사행길 역사 기록을 기반으로 삼아 행로를 탐사하고 고증하며, 연구와 기록을 병행하는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영일 정씨 포은(정몽주)공파 종손 정래정 선생.   /정재훈 기자
이 가운데 포은 선생의 동상 봉헌 등 선양사업에 매진해 중국 곡부, 동주, 양주, 영파 등 포은 선생의 사행길을 따라 동상을 봉안하기도 했다.

그는 또 중국 강소성 양주시가 포은 선생의 묘역이 있는 경기도 용인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당성유지박물관에 포은 선생 동상을 봉안할 때 제작 비용을 협찬하는 등 적극 참여했고, 2019년에는 중국 8대 천궁과 7대 회관 중 하나로 꼽히는 절동해사민속박물관에 포은 선생 동상을 기증하는 개막식을 개최했다.

국내에서도 포은 선생 기념사업을 주도, 2008년 포항시 포은도서관에 포은 선생 흉상을 봉안했다. 2014년에는 포은 선생의 출생지인 경북 영천시에 포은 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임고서원에도 흉상을 봉안하고, 2015년에는 영천시 임고면 우황리 중창된 포은생가에 사비로 제작한 동상과 영정을 기증했다. 경기 용인에서도 2014년 용인시 포은아트홀에 포은 선생 동상을 제막, 2015년 포은초등학교에 포은 선생 흉상을 봉안했다. 또 종택 재건을 위해 용인에 2000여 평의 토지를 매입해 강원도에서 춘향목을 공수해 심기도 했다. 아울러 종가가 보관 중이던 궤장본을 2006년 경기도박물관에 기증해 이 궤장본이 복원 후 2011년 보물 제1110-2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정 종손은 인터뷰 말미에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을 언급하며 나라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있어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중국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된 배경에 대해 "소설에서도 보면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나. 한 민족, 한 나라가 자기 언어가 없으면 안 된다"라며 "아버지께서도 '언어의 정체성, 국가·민족 개념이 언제 없어질지 모르지만 오랫동안 유지될 것이다. 그러니까 모국어를 먼저 잘 알아야 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한국말을 배우고 한국인 학교를 갔다"라고 했다.

이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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